BITCH RUNWAY
야행 본문
가로등 불빛이 작고 어두운 방안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옷장을 연다. 청바지와 짙은 색의 얇은 점퍼를 골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평범하다. 튀는 옷차림은 목격자를 만들기 좋으므로 적절치 않다. 마지막으로 마스크와 장갑을 끼니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밖의 기척을 살핀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닫는다. 조용한 복도라 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다행인 것이 있다면 다세대라는 점이다. 나 말고도 이 복도에 여섯 가구가 더 살고 있다. 4층짜리 건물이니 곱하기 4를 하면 24, 즉 이 건물에서 지금 이 시간에 밖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최소 24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용의자의 수가 되겠지.
발소리를 죽여가며 계단을 내려와 1층 현관에서 골목의 동태를 살핀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잽싸게 밖으로 나온다. 1층에 도어락이 설치돼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도어락은 열고 닫을 때마다 전자음이 너무 거슬린다.
"야옹."
흠칫 놀라 쳐다보니 가까이에 고양이가 와 있다. 이럴 때는 못본 척하는 게 최고다.
나는 고양이를 피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고양이를 따돌리고 도망가다 눈앞에 방범 카메라를 발견했다.
"윽."
방범 카메라에 찍히다니, 정말 초짜가 아닐 수 없다. 겨우 겨우 카메라 사각지대에 다다라 한숨을 돌린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는지도. 그래도 밤에 복면까지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들어졌다. 굳이 이런 나를 잡자고 방범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 것인가? 씁쓸해진다.
나는 천천히 목표 지점을 향해 걸음을 뗀다. 새로 달린 카메라가 있을 수도 있으니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집들은 불이 대개 꺼져 있고, 켜져 있다 해도 대개는 창문이 닫혀 있다. 날씨가 추워진 것이 다행이다. 창이 열려 있었다면 아마 성공하기가 몇 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방에 눈이 달려 있다는 느낌이니.
왜 나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민폐를 끼치나? 많은 이들은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단지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이 좀더 공평해진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남은 음식을 버려대는 주제에 굶고 있는 약자를 무시한다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목표 지점에 가까이 왔다. 여기를 목표 지점으로 정한 이유는 역시 인적이 드물어서이다. 이제 몇 발짝만 더 옮기면 된다. 나는 발걸음을 크게 뗀다.
"야!"
심장이 덜컹 하며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싸쥐는데, 예상했던 손전등 빛은 쏟아지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둘러보는데 머리 위에 있는 집에서 누군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들키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해 마지않는 행동을 시작할 차례이다. 나는 가방 속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들이 온다. 나는 봉지에서 물건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는다.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내 물건에 다가온다. 역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이 내 물건을 마음껏 탐색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잠시 피해 준다.
고양이들이 사료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장갑과 마스크를 벗는다. 야밤에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니까 도둑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뭐, 지금이야 고양이한테 밥 주는 것을 도둑이나 마찬가지로 싫어들 하는 시대가 됐지만.